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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앨리스이야기는 빅토리아 여왕의 비밀자서전일까?


글쓴이: * http://www.2sangbook.com

등록일: 2017-02-26 18:19
조회수: 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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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84년 2월 10일자 7면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21000209207003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가 Charles Lutwidge Dodgson 의 작품이 아니라 빅토리아 여왕 (Queen Victoria) 의 비밀 자서전이라는 기사.

과연 믿을만한 얘기인지 궁금해서 출처를 찾아보았습니다.
Study: "Alice in Wonderland" penned by a queen, Mohave Daily Miner, Feb-5-1984

이 기사에 따르면, 1983년 12월 <Queen Victoria's Alice in Wonderland> 를 출판한 'Continental Historical Society' (이하 CHS 로 표기) 라는 단체는 David Rosenbaum 이란 사람이 협회장으로 책의 수석 에디터이고, 스스로 CHS 를 소개하길, "1973년 London Times 에 Dodgson 이 Lewis Carroll 이 아니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들이 실린 이후 부터 원저자를 조사한 사람들의 그룹" 이며 전직 역사학 강사, 심리치료사이자 작가, 은퇴한 영문학 교수, 도서관 보조 큐레이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밖에 CHS 의 공식 활동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럴듯한 협회 이름과는 달리 소개를 보자면 아무래도 학문적 엄밀성을 가지고 씌어진 책 같지는 않습니다만, 한국 기사에는 소개되지 않은 상당히 흥미로운 논거도 있네요.


1862년 7월 4일

바로 이 날 Dodgson 은 Liddell 가의 세 자매와 함께 옥스퍼드 근교에서 소풍을 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에 홀딱 반해버린 10살 난 둘째 Alice Liddell 은 글로 남겨달라고 부탁하였고, 이것이 작품을 쓰게된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날짜는 Dodgson 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고, 당시 소풍을 따라나섰던 친구 Canon Robinson Duckworth 의 기록도 같습니다. 후일 하그리브스 부인 (Mrs. Alice Hargreaves) 이 된 Alice Liddell 이 1932년 자신의 회고록에서 밝힌 날짜와도 일치합니다.

하지만 의문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그 날짜가 1862년 7월 4일이라고 기억하고, 그 날은 맑은 날씨였다고 써놓았습니다.
"golden afternoon" ( - Dodgson)
"beautiful summer afternoon" ( - Duckworth)
"blazing summer afternoon" ( - Hargreaves)

그러나 CHS 의 고증에 의하면 그날 옥스퍼드는 서늘하고 조금 습기찬 날씨 (cool and rather damp) 였고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0.17인치 가량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Just who really did write 'Alice in Wonderland'?, Joseph McLellan, The Washington Post; Anchorage Daily News, Feb-5-1984)

이게 정말이라면 글쎄요, 처음 Dodgson 이 거짓으로 날짜를 지어 내고 책의 인기에 도취된 그의 친구와 Alice 가 가짜 기억에 편승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날 Dodgson 일행들이 너무나 즐거운 나머지 빗방울이 떨어지던 날씨까지 맑은 날씨로 기억하게 된 것일까요?



Dodgson (1832-1898) 과 빅토리아 여왕 (1819-1901)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았습니다.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연결 고리를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가 출간된 후 빅토리아 여왕 역시 무척 재미있게 읽고, 차기작은 자신에게 헌정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원래 수학자였던 Dodgson 이 <Elementary Treatise on Determinants> 라는 수학과 관련된 학문적인 저작물을 헌정하자 여왕이 화를 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Dodgson 자신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했습니다만. (http://www.bbc.co.uk/dna/h2g2/A4462670#back1 - 주석1)

사진

누가 진짜 소설 속 앨리스의 모델일까?
(Source : Wikipedia®)

여왕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좀 우울했다 (rather melancholy childhood)"고 묘사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억압당하며 지냈고 사이가 나빴던 것도 맞습니다.
(http://www.englishmonarchs.co.uk/hanover_6.htm)

실제로 심리적인 질환의 일종으로 자신의 과거를 편집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녀의 어린 시절이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비극적이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엄격한 규칙을 지킬 것을 강요 받았던 그녀의 어린 시절은 당시의 상류층 영국 소녀들에게 일반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야외에서 활동할 시간도 충분히 주어졌으며, 애완동물도 여럿 키울 수 있었습니다. (*1)

게다가 꽤 말괄량이였던 모양입니다.
가정교사였던 Louise Lehzen 의 품성교육 기록일지를 들춰보면, 빅토리아가 13살이던 1832년 9월 말 경에는 각 단어마다 네 번씩 밑줄을 그어가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끔찍하게 행실이 나쁘다!!!!! (VERY VERY VERY VERY HORRIBLY NAUGHTY!!!!!)" 라고 써놓는 등 상당히 자주 빅토리아를 나무라고 있습니다. (*2)

또 여왕은 좀처럼 흥을 내지 않던 것으로 유명하지만 어렸을 때는 달랐습니다.
어릴 적의 일기에는 "나 진짜 엄청 신났었어! (I was very much amused indeed!)" 라는 말로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보고 온 감상이 적혀있기도 합니다. (*3)

여왕이 비밀리에 자서전을 대리 출판하게 할 정도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그 기억을 아름답게 재창조하고 싶어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In 'Wonderland'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아동문학의 세계가 아니다. 알레고리와 언어유희의 기교는 극도로 정교하며 이를 통한 효과는 당시에는 전무후무한 것이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괴델,에셔,바흐: 영원한 황금 노끈, p62, 박여성 역, D.R.Hofstadter, 까치글방: 서울, 1999 - 주석1)

이렇게 수리논리학적 사고가 뒷받침된 정교한 구조의 글을 쓸 수 있는 역량이 여왕에게 있었을까요?

여왕 역시 상당한 수준의 지적 소양과 교양을 갖추고 있긴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언어, 작문, 음악, 역사, 미술, 산술, 지리,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교육을 받았고, 10살에 이미 'Sophia and Adolphus' 라는 제목의 멜로드라마 경향의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극장이나 콘서트를 다녀온 뒤에 공연 장면을 수채화로 옮겨 그리는 취미도 있었습니다. (*4)
(*1,2,3,4 : http://www.bbc.co.uk/history/british/victorians/queen_victoria_01.shtml)

하지만 확실한 것은 소설 속에 숨어 있는 수학적인 퍼즐과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풍자가 출판 당시 성인층에게도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요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과연 여왕이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비밀 자서전을 쓴 다음 출판하도록 종용하였을지는 의문이네요.

또 소설 속의 세부 묘사를 보아도 Dodgson 의 개인적인 경험이 많이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가령 앨리스가 원더랜드에 진입할 때 통과한 토끼굴은 Dodgson 이 졸업한 Christ Church College 의 메인홀에 있는 실제 계단과 흡사하고, 그리폰과 토끼의 조각상은 그의 아버지가 참사회원을 지냈던 Ripon Cathedral 에 있는 좌석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http://www.hello-yorkshire.co.uk/ripon/tourist-information)



Alice Pleasance Liddell

1872년 출간된 속편 <거울나라의 앨리스 (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 는 맨 마지막에 이합체 (acrostic, 離合體) 형태의 시 하나로 끝납니다. 따로 제목이 없기 때문에 첫줄을 따서 보통 "A Boat Beneath a Sunny Sky" 라 불리지요. 앞글자만 따서 세로로 읽어보시겠어요?

A boat beneath a sunny sky,
Lingering onward dreamily
In an evening of July--

Children three that nestle near,
Eager eye and willing ear,
Pleased a simple tale to hear--

Long has paled that sunny sky:
Echoes fade and memories die.
Autumn frosts have slain July.

Still she haunts me, phantomwise,
Alice moving under skies
Never seen by waking eyes.

Children yet, the tale to hear,
Eager eye and willing ear,
Lovingly shall nestle near.

In a Wonderland they lie,
Dreaming as the days go by,
Dreaming as the summers die:

Ever drifting down the stream--
Lingering in the golden gleam--
Life, what is it but a dream?

(http://en.wikipedia.org/wiki/Alice_Liddell)


1864년 11월 26일

Dodgson 은 후일 앨리스 이야기는 넌센스일 뿐이며, 현실의 어떤 아동도 소설 속 앨리스의 모델로 삼지 않았다고 여러번 언급합니다. (Morton N. Cohen (ed), The Letters of Lewis Carroll, London: Macmillan, 1979)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Alice Liddell 에게 세간의 관심이 행여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 아닐까요? 자신이 쓴 글이 아니라 여왕의 글이라면 여왕을 의식하지 않고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었겠지요.

행복한 소풍을 다녀온 2년여 뒤인 1864년 11월 26일에, 마침내 Dodgson 은 직접 그린 그림까지 곁들인 Alice's Adventures Under Ground 라는 제목의 자필 원고를 Alice Liddell 에게 손수 선물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Alice%27s_Adventures_in_Wonderland)

네, 여왕이 아니라 Alice 에게 말입니다.


출처 : All the references are included in the main 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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