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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이용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때그때의 유행을 바람처럼 타고 넘는다.  최근엔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아니나 다를까 TV를 보아도, 신문이나 잡지를 보아도, 거리에 있는 간판을 보아도 ‘웰빙’이란 말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한동안 ‘월드컵’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다.  2002년도의 일이라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그 때는 모든 게 다 ‘월드컵’이고 ‘태극기’였다.  그 전엔 -내가 생각 하기에- 서태지라는 가수를 필두로 ‘신세대’, ‘엑스세대’ 같은 게 유행이었고 그 보다 전에는 ‘올림픽’이 유행이었던 시절도 생각이 난다.

내가 정말 어렸을 때 ‘새마을’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는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아침 마다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 골목을 청소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던 때였다.  학교에 등교 할 때면 ‘새벽종이 울렸네...’하면서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던 때이기도 했다.  당시 우리 동네에는 ‘새마을 이용원’이 생겼는데 이 역시 그 때 유행하던 ‘새마을’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따다가 붙인 것이었다.  남자들이 머리를 깎을만한 곳이 거의 없었던 동네에 새마을 이용원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었다.  가격도 단 돈 오백 원으로 비교적 저렴했다.  나는 두 달에 한번씩 아버지와 함께 새마을 이용원으로 머리를 깎으러 갔다.  그 때는 나처럼 어린 녀석에게는 머리를 어떻게 깎아야 할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머리를 깎아주는 아저씨도 나에게 어떤 스타일로 머리를 깎아야 할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자리에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아저씨에게 맡기면 된다.  그러면 아저씨는 머리를 깎고 뒷머리에는 분 같은 것을 발라서 면도하는 칼로 쓱쓱 다듬어 준다.  머리 깎는 것을 마치고 나면 지금도 미용실에 가면 직원이 머리를 감겨주지만 그 때는 얼굴까지 닦아 주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말 할 수 없이 친절하고 편안한 장소가 바로 새마을 이용원 이었다.

요즘에도 수많은 미용실들이 저마다 최고의 서비스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들어서면서부터 부담스러울 정도로 깨끗하고 머쓱한 분위기에 눌려 당황스럽기까지 할 때가 있다.  직원들은 손님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잘 웃지도 않는다.  하루 종일 밀려드는 손님들에 힘들어하는 표정을 볼 때도 많다.  손님과 직원들 사이에는 어떤 친근한 교류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남자 손님의 경우,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머리를 깎는다.  기계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빠르고 빈틈이 없다.  아무런 말도 없이 빠르게 머리를 깎는다.  다음 손님을 빨리 맞아야 하니까.  그래야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다시 한번 새마을 이용원을 찾아갔다.  물론 세월의 바람은 이 곳의 문틈도 넘어서 있었다.  오백 원이던 요금은 어느새 칠천 원이 되어 있었고 ‘아이롱 파마’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느껴지는 그 낡은 기름 냄새며 수건을 통에 넣고 삶는 구수한 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머리를 깎으면서 손님과 농담을 주고받는 그 넉넉함 또한 세월의 바람을 따뜻하게 녹였다.  그리고 이건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인데, 한 번 머리를 깎기 시작하면 삼십 분 정도나 공을 들이는 그 느릿한 가위질.  슬며시 잠이 들 정도로 편안한 라디오소리와 함께 새마을 이용원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2005.04.05
    
제목: 새마을 이용원


사진가: * http://www.2sangbook.com

등록일: 2007-03-04 16:17
조회수: 2859 / 추천수: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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