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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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4
아름다운 마을 남사 예담촌
운리에서 백운계곡으로 들어가는 마을길
백운계곡 숲길로 들어서기 바로 전, 지금까지 지나왔던 마을길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

[백운계곡 숲길을 걸으면서 찍은 영상]

씨앗학교 아이들과 함께한 지리산 둘레길 여행(4)
9월 30일-운리부터 백운계곡을 지나 덕산까지

예담촌에서 예상하지 못한 멋진 선물을 받다.

남사 예담촌에서 하루를 보냈다.  구월 말이라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고 딱 적당하다.  지리산에 와서 늘 느낀 것이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확실히 공기가 좋다.  코가 뻥 뚫리고 금방 눈을 떴는데도 머리가 개운하다.  도시에 살면서 어렸을 때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은 말이 바로 ‘소중한 환경’이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은 공기 – 우리가 늘 숨 쉬고 있는 이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을 들어왔지만 그걸 몸으로 느끼도록 깨달은 적이 없다.  지리산에 와서 비로소 알았다.  세상 어딜 가든 그곳을 꽉 메우고 있는 공기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 말이다.

예담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지정됐다고 한다.  그걸 기념하기 위해 매년 예담촌 전통 문화제를 여는데 마침 우리가 묵고 있는 날 행사를 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게다가 이날은 문화제 기간 중에서도 가장 멋진 공연이 예정 되어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출연 한다는 거다.  선생님과 아이들 여럿이 신기한 듯 공연장으로 몰려나갔다.  나 역시 김덕수 사물놀이패 라고하면 가끔 TV에서나 봤지 실제로 본 일은 없기 때문에 무척 설렜다.  공연은 굉장히 멋있었다.  내가 봤던 그 어떤 대중음악 공연과 견주어 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연주 기량에 놀랐다.  아무튼 우리는 힘든 일정 막바지에 뜻하지 않은 귀한 선물을 받은 셈이다.

공연을 즐기고 잠들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회의를 했다.  우리 모두 며칠 사이 갑자기 먼 거리를 걸었기 때문에 몸이 조금 아픈 아이들이 있다.  그래서 다음 날 걷는 구간도 마찬가지로 걷고 싶은 아이들만 걷는 걸로 결정했다.  대신 남는 아이들은 예담촌에서 얼마 멀지 않은 덕산 장터에 가서 저녁 해먹을 것을 사갖고 오기로 했다.  덕산동 장터는 오늘 걷는 구간인 ‘운리-덕산’ 마지막 부분에 있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춘다면 오후에 두 일행이 함께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운리마을까지 히치하이킹을 하다.

둘레길 시작 지점인 운리마을까지는 대중교통이 아직 없다.  나와 아이들은 예담촌에서 덕산 쪽으로 계속 걷다가 운리로 꺾어 들어가는 길모퉁이에서 히치하이킹(길가는 차를 세워서 얻어 타는 일)을 하기로 했다.  도시에서 지내 온 아이들은 무작정 남의 차를 얻어 타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아이들 입장에선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지 그걸 실제로 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운리까지 8킬로미터 정도 남은 곳 마을 입구 다리에서 무작정 차를 기다렸다.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에 자가용은 무리라고 생각했던지 아이들은 승합차나 트럭이 지나갈 때 손을 흔들어 차를 세우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차들은 아침에 대부분 일터로 나가는 중이기 때문에 잘 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큰 차는 포기하고 일행을 둘로 나눠 한 모둠씩 자가용을 잡아보기로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그 시간에 운리에서 나와 시내 쪽으로 가는 차는 있었지만 마을로 들어가는 차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에서 삼십 분 넘게 차를 잡기 위해 기다리다가 지쳐서 몇몇 아이들은 그냥 운리까지 걸어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한편으론 지금까지 노력한 것도 있으니 좀 더 차를 기다려 보자고 했다.  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지리산 백운계곡까지 이어지는 둘레길을 걷는 것도 꽤 긴데 둘레길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힘을 빼면 안 될 거라는 게 모두가 내린 결론이다.  기왕에 차를 잡아타려는 계획을 세웠으니 더 적극적으로 해보자는데 마음을 모았다.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열심을 다해 차를 잡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검은색 중형차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아무리 중형차라지만 우리 모두가 한 번에 타기는 어렵다고 생각이 들어서 첫 번째 모둠이 먼저 타고 운리까지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운전석에 앉아있던 나이가 지긋한 남자분이 이런 우리를 보고, 서로 겹쳐 앉으면 한 번에 다 탈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어쩐지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두 모둠으로 나누려고 했던 건데 어르신이 먼저 흔쾌히 모두 차에 타라는 손짓을 해주시니 즐거운 마음으로 다 함께 승용차에 몸을 집어넣었다.  막상 이렇게 겹쳐서 앉아 타니까 생각했던 것 보다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도착하고 차에서 내린 다음 안 건데, 어르신은 사실 운리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다른 곳으로 가셔야 하는데 우리들을 운리까지 태워주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셨다.  다시 한 번 지리산 인심을 듬뿍 느낀 일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꾸미지 않은 것이다.

운리에서 덕산까지 가는 길 중에 가장 좋은 경치는 백운계곡까지 가는 동안 만난다.  날씨도 워낙 좋아서 우리들은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들판에선 한창 곡식이 익어가는 계절인지라 샛노란 색으로 물든 곳곳은 말 그대로 ‘황금들판’이 따로 없다.  백운계곡 입구까지 닿는 길은 이렇게 마을과 마을을 지나면서 들에 핀 꽃들과 이야기하는 길이다.  임시도로를 따라 한 시간 남짓 올라가다보니 지금까지 거쳐 온 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곳이 나오는데 이 풍경은 어떤 말로도 표현이 어려울 만큼 아름답다.  이것은 그림이 아니고 훌륭한 작곡가가 지은 음악이 아니다.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영화 속 장면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일부러 꾸미지 않은 것이다.

임시도로가 끝나는 부분에서 길은 갑자기 왼쪽으로 들어가는 숲길로 이어진다.  이 숲길은 금방 왔던 임시도로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빽빽한 숲길이다.  여러 종류 참나무와 활엽수가 섞여서 서로 자랑하듯 늘어섰는데, 한편으론 가만히 보니 서로가 다른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자리를 스스로 내어준 것처럼 어떤 질서가 보이기도 한다.  숲에 자라는 나무들은 저마다 자기 자리가 있고 그것은 빼앗거나 억지로 몰아내는 일이 없다.  나무와 풀들은 크고 작은 모습 그대로, 누가 잘 나고 누구는 하찮고를 따지는 일 없이 서로 어울려 자란다.  빼앗고, 몰아내고, 늘 이것저것 따지는 건 사람들만 그렇다.  심지어 최근엔 자연을 몰아내고, 자연이 있던 자리를 빼앗는가하면 사람들이 보기 좋도록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앞세워 자연을 억지로 바꾸는 일마저 저지르고 있으니 하늘에 계신 조물주가 화낼 일이다.

여기서부터 이어진 숲길은 고작 한 두 사람이 오고 갈만큼 좁은 길이다.  사방에는 바람소리, 새소리, 늦여름 매미소리가 시끄럽다.  우리 일행은 백운계곡을 얼마간 앞두고 만난 작은 개울에서 쉬며 가지고 온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리산에서 먹는 점심은 보잘 것 없이 소박하지만 바람소리, 새소리를 반찬삼아 먹는 밥은 금방 뱃속을 든든하게 했다.

곧이어 다시 숲길을 따라 걸으니 백운계곡을 만난다.  굽이치는 계곡사이 군데군데 넓은 바위에 앉아서 점심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이 반갑다.  우리는 차가운 계곡물에 손을 씻고 반대편 숲길을 따라 걸었다.  백운계곡을 지난 다음 만난 숲길은 ‘마근담’으로 이어진다.  둘레길 안내 책자에 보니까 마근담은 ‘막힌담’이라는 말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혹은 골짜기 생김새가 마의 뿌리처럼 곧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이 숲길은 백운계곡 저편 마을 사람들이 반대쪽 마을로 갈 때 쓰던 마실길이다.  이 길은 다시 우리가 왔던 만큼 길게 이어져 덕산으로 통하는 길까지 닿아있다.

멋진 숲길은 마근담 입구에서 끝나고 그 다음부터 아랫동네 덕산까지는 말끔하게 포장된 도로다.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 시멘트로 포장된 길(게다가 내리막길은 더욱!)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포장도로가 나오자 우리는 모두 겁을 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덕산까지 이어지는 길고 지루한 내리막 포장도로가 우리 모두를 지치게 만들었다.


덕산 장터에서 만난 다른 일행들. 그리고 마지막 밤

운리에서 시작해 백운계곡을 지나 덕산까지 이어진 길은 전부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지금까지 일주일 동안 걸었던 네 구간 중에서 가장 길었지만 대부분은 백운계곡을 중간에 두고 있던 아름다운 숲길이었기 때문에 무척 즐거웠다.  

덕산까지 내려오니까 비로소 삼거리 찻길과 작은 가게가 나왔다.  우리들은 가게에서 물이라도 좀 사 먹을 수 있을까 싶어서 달려왔지만 역시 가게 문은 닫혀있었다.  다행히 잠시 후 주인이 와서 문을 열어주었고 거기서 예담촌으로 가는 버스표도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문이 닫힌 가게를 보고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다.  버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덕산 장터에 있을 일행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장터에 나갔던 일행도 마침 장보기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가게 앞에서 예담촌으로 가기위해 기다리고 있던 바로 그 버스에 장터 일행도 타고 있던 거였다.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는 한 버스에 타고 예담촌으로 갔다.

힘들게 걷고 나서 예담촌에서 먹는 마지막 저녁은 즐겁고 맛있었다.  밥을 먹고 난 다음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회의를 해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정했다.  나를 포함해서 선생님들은 모두 지쳤는데 아이들은 여전히 힘이 남아도는지 늦게까지 놀고 밤 열두시가 되어 하나둘씩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이번 지리산둘레길 여행을 오기 전에 미리 답사여행으로 몇 구간을 걸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까지 더하면 둘레길 전체 구간 중에서 절반을 걸은 셈이다.  이것이 ‘둘레길’인가 싶을 정도 약간은 험한 산길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아름다운 지리산을 만끽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아주 귀중한 경험이 되었을 거다.  어릴 적 기억은 평생을 두고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다.  아마 이번에 함께 여행을 한 아이들은 무척 좋은 기억을 한가득 가슴에 품었을 거다.

추억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자연에 대한 생각이다.  우리는 지리산 주위 산길과 마을을 돌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았다.  사람은 자연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사람이 마음대로 자연을 바꾸고 거기에 아파트나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건 당장에 이로울 수 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어떤 식으로든 꼭 치르게 된다.  그러면 그것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장치를 자연에 설치하면 될까?  결국엔 재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은 혼이 나게 되어있다.

자연 그대로 모습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건 얼마나 좋은가!  따져보면 사람도 자연의 일부니까 말이다.  자연은 넓은 포용력으로 사람을 용서하고 껴안을 준비가 돼있다.  이제 사람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행동할 때다.  막개발을 멈추고 자연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리산은 오늘도 여전히 커다란 숨을 내쉬며 침묵으로 사람들을 가르친다.  함께 살자고.  자연과 사람사이 갈라진 틈에 풀과 나무를 심자고 조용히 말하고 있다.

## 2011년 9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일주일동안 여행한 지리산 둘레길 이야기를
네 번에 나눠서 연재 합니다.
    
제목: 지리산 둘레길 4


사진가: * http://www.2sangbook.com

등록일: 2011-11-17 22:43
조회수: 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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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2012-01-19 15:49:42
ㅎㅎ 저도 걷는 것 좋아하는데... 다음에 이런 행사가 있을때 봉사가가 필요하면 불러주세요~~
  2012-01-19 17:21:59
모란// 아주 좋습니다. 일단 책방에 한번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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