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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뛰지 마라
지하보도에서 만난 정지된 여자의 시간과 빠르게 흐르는 남자의 시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이상 이런 일상을 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바쁜 걸음으로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리는 건 부자연스럽다.  사람의 신체구조는 달리거나 뛰어오르는 것에는 부적절 하다.  치타처럼 다리나 어께 근육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고라니 같은 점프력을 지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몸이 가벼워 도마뱀처럼 두발로 빨리 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늘 뛰거나 뛰듯이 빨리 걷는다.

출판사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출근 시간은 여덟시인데 집에서 출발하면 딱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지하철 사호선 한성대 입구 역에서 내리면 약 오 분 정도 걸린다.  한번은 지각을 할 것 같아서 지하철 역 출구에서부터 막 뛰었다.  있는 힘껏 뛴 것 같은데 도착해 보니 절약된 시간은 걸을 때와 비교해 보니 고작 일 분 정도였다.  입에서 단 맛이 나도록 뛴 것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결과다.  그 후로부터는 약속 시간에 약간 늦을 것 같더라도 되도록 뛰지 않는다.

이미 속도가 붙을 대로 붙은 양복 신사 곁으로 정지 되어 있는 한 여자가 있다.  지하보도를 미끄러지듯 훑어 내려가는 구두 옆으로 손에는 바구니를 갖고 있는 한 여자가 있다.  카메라나 렌즈를 사기 위해서 남대문을 가다 보면 지금은 새로 지은 YTN건물 근처의 지하보도에 정지된 시간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하염없이 무릎을 땅에 대고 앉아있는 여자.  항상 수건을 머리끝까지 덮고 있으니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이는 적은지 많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늘 이 자리에서 마주치는 모습이지만 오늘따라 죽은 듯이 정지되어 있다.

그 옆을 후닥닥 내리치는 신사 한 분.  정지 되어 있는 것에는 신경을 쓸 수도 없는 대단한 속도다.  나는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서 이 모습을 정지된 평면 속에 담아보려 했지만 결과물을 보니 여전히 멈춰 있는 여자는 멈춰있고 그 옆의 빠른 발걸음은 물처럼 쏟아져 내려간다.

여기 지하보도에선 도무지 걷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 순간 멈춰서 머뭇거리는 사람은 십중팔구 어느 출구로 나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사람들아, 천천히 걸어보자.  뛰어서 이 길을 건너면 그날 밤 잠자리에서 다리만 아플 거다.

나는 이 날도 천천히 걸어서 광화문 까지 왔다가 거기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따뜻한 물에 머리를 감으니 저절로 잠이 온다.

2005.04.30
    
제목: 사람아, 뛰지 마라


사진가: * http://www.2sangbook.com

등록일: 2007-02-11 14:56
조회수: 3194 / 추천수: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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