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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송의 찰나
예술의 전당 '찰나의 거장' 전시장 입구
브레송 처럼 길게 늘어진 나의 그림자를 사진기에 담아 본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선선한 바람이 부는 오후에 나는 브레송을 만나기 위해 전시장으로 향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이름을 떠올리게 되는 브레송.  타계한지 이제 일 년이 되었지만 마치 먼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사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느낌이다.  그런 느낌이 브레송의 사진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를 ‘찰나의 거장’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그는 순간적인 ‘찰나’를 잡아내는 천재적인 눈과 구성 감각을 가졌다.  캔디드 사진의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 브레송 - 하지만 우리가 재미삼아 찍는 캔디드와 그의 작업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제 막 입문 단계의 사진가는 그저 순간의 시간을 필름에 잡아두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브레송의 ‘찰나’는 그 짧은 순간에 그의 철학을 담고 이미지를 재해석하는 수준에 이른다.  ‘찰나’는 그에게 있어서 결코 ‘번쩍 하는 황홀한 순간’이 아닌 것이다.  그만큼 브레송은 ‘찰나’를 잡아내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잠깐의 순간을 필름에 담기 위해서 그가 필름의 반롤 이상을 소비한다는 말만 들어도 과연 그의 ‘찰나’가 얼마나 긴 시간 이었을까 짐작이 간다.

조용한 클레식이 흐르는 전시장 안에는 브레송의 사진 200여점이 네 가지 주제를 가지고 전시 되어 있다.  모든 사진은 흑백이고 전시회의 제목처럼 ‘찰나’를 잡은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서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다.  그 이유는 전시장에 나온 사진들이 그렇게 ‘잘 찍은’ 사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값비싼 사진기로 선명하고 쨍한 사진을 찍는다.  실제에 가까운 색감과 과도한 컴퓨터 작업으로 어떤 사진은 회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브레송의 사진들은 거장이라는 별명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흔한 흑백 사진이다.  심지어 화가 피카소를 찍은 가로 프레임의 사진을 비롯한 몇몇 작품은 사진의 초점도 맞지 않고 흔들려서 흐릿하기 까지 했다.  아마 누군가가 이렇게 인물사진을 찍어서 인터넷 카메라 동호회 갤러리에 올렸다가는 대번에 욕을 얻어먹지 않을까.

그러나 모든 사진을 감상하고 나서 느낀 것은 ‘이게 그의 스타일 이다’라는 것.  사진은 그의 철학이다.  어떤 다른 사람의 철학이 아니고 그 자신의 확고한 철학이다.  그의 사진은 어떤 기술로 찍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진기의 프레임을 통해서 무엇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그래서 일까, 그의 사진에는 색이 없다.  왠지 컬러 필름으로 찍으면 더 나아 보였을 것 같은 이미지에도 여지없이 흑백이다.  그는 시각을 통해서 마음 깊은 곳의, 정수리 깊은 곳에서 숨쉬는 철학을 담아내는 작업에 충실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당시의 많은 유명 인사를 촬영하기도 했는데, 그것 역시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놀라운 발상을 보여준다.  우리는 유명 인사를 모델로 촬영한다면 대부분 잘 갖춰진 세트와 훌륭한 카메라 장비를 생각한다.  그러나 브레송의 사진에 나타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이 매일 사용하고 생활하는 침실, 거실, 작업실, 부엌 같은 장소에 아무렇게나 앉거나 서있다.  멋있게 옷을 입고 멋진 포즈로 연출을 하는 경우도 드물다.  주인공들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유명한 사람들이었지만 사진 속의 그들은 영락없는 옆집 아저씨, 아줌마 들이다.  그리고 죽어가는 노인일 뿐이다.

화가 피카소는 그의 침실에 서서 웃옷을 벗고 상체를 드러낸 모습이다.  혁명가 체 게바라는 카페에 앉아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채로 환하게 웃으며 차를 마신다.  야수파의 대표적인 화가 앙리 마티스는 야수파라는 화풍에 어울리지 않게 새하얀 비둘기를 손에 쥐고 데생하고 있다.  그리고 심리학자 프로이드의 손자인 화가 루시안 프로이드의 사진에서는 거꾸로 놓여진 화가의 작품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화가의 사진을 찍는데 그의 회화 작품은 배경에서 돌려져 있다.  캔버스의 뒤편이다.  브레송의 작품 속에서 그들은 더 이상 유명 인사가 아니다.  사진 속에서 의도적으로 돌려 세운 루시안 프로이드의 회화 작품 - 아마도 그 캔버스가 바로 놓여져 있었더라면 사진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루시안 프로이드 그 자신보다는 그가 그린 회화 작품에 더 눈길이 갔을 것이다.  브레송은 사람 그 자체의 내면을 담고 싶었던 것이다.

전시장을 모두 둘러 본 후 밖으로 나오니 이미 감상을 마친 몇몇 청년들이 브레송의 사진을 흉내 내며 찰나를 담아 보려 하고 있다.  브레송의 찰나가 그렇게 쉽게 잡히겠냐마는 우리 주변에 이렇게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있는 한 한국의 브레송도 언젠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플랫폼에서 깜빡 생각에 잠겼던 나는 지하철을 기다리다 문이 닫히려는 ‘찰나’에 간신히 몸을 들여 놓고는 가쁜 숨을 내 쉰다.

2005.05.24
    
제목: 브레송의 찰나


사진가: * http://www.2sangbook.com

등록일: 2007-02-11 15:02
조회수: 2925 / 추천수: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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