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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보는 남자
인사동에서 만난 신문 보는 남자
인사동에 들러서 이것저것 구경을 좀 하고 있었다.  인사동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붙어있는 곳이라 종로 쪽 입구에서 들어 갈 때는 왼쪽에 있는 상점들을 구경하고, 안국동 쪽에 닿으면 뒤로 돌아 오른쪽에 있는 상점들을 구경하면서 나오면 편리하다.

오랜만에 봄 날씨라 따뜻하기도 하고 바람도 적어서 인사동 골목엔 중국사람, 일본사람, 유럽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러다가 종로 쪽 입구 길가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가에 앉아서 신문을 읽는다는 게 웬만큼 얼굴이 두껍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이상하기도 하고 눈에 거슬리기도 하여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번씩 보고 가기에 나도 지나가다 보게 되었는데, 신문에는 별로 특별한 기사도 없는 듯 했다.

그렇게 두 어 시간 정도 인사동을 돌며 집에서 따뜻하게 내려 마실 차를 사가지고 다시 종로 쪽 입구로 나오려는데, 이 남자는 아직까지도 그 자리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는 게 아닌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려다 무슨 심각한 기사라도 났는가 싶어서 은근히 옆에 서서 기사 내용을 보았다.  이 남자는 옆에 사람이 서있는데도 별로 신경 쓰는 기색도 없어 보이는가 싶었는데, 신문의 날짜를 보니 이틀이나 지난 신문이었다.  뭣 하는 사람이기에 이틀이나 지난 신문을 가지고 몇 시간씩 붙잡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져서 이 남자에게 말을 걸어 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고민하다가 차라리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서 이 남자를 관찰했다.  그랬더니 더욱 신기한 것은 삼십 분 정도가 지나도록 신문을 한번도 넘겨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읽고 있는 면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  혹시 글을 모르는 사람인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얼굴 표정이 어느 때는 살짝 웃기도 했다가 또 어느 때는 심각하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머리를 긁을 때도 있고 하는 걸 보면 분명히 기사를 읽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분명히 글자를 천천히 읽고 있었다고 믿는다.  한 자 한 자 음미해가며 또박 또박 읽고 있었을 것이다.  신문은 굉장히 기사의 양이 많은 매체다.  하루 분량의 신문은 웬만한 중편소설 이상의 분량이다.  그걸 사람들은 너무 빨리 읽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신문에 나오는 사설만 읽고 버리거나 지하철 선반에 올려놓고 내리기도 한다.  

신문을 자주 보지 않기 때문에 정기 구독은 하지 않지만 나는 가끔 지하철을 타고 멀리 갈 때는 신문을 사서 본다.  그리고 그 신문을 하루가 저물도록 손에 쥐고 다니면서 읽는다.  재미없는 기사만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깨알같이 박혀있는 글자를 읽는 그 자체를 즐기기 시작하면 굉장히 흥미진진한 상태가 된다.  아마 인사동에서 만난 이 남자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하루를 즐기고 있었겠지.  다음번에 다시 만나면 용기를 내서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그게 어떤 방식이든지 공유해보고 싶다.

2005.03.30
    
제목: 신문 보는 남자


사진가: * http://www.2sangbook.com

등록일: 2007-02-11 14:53
조회수: 3641 / 추천수: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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