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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윤기의 쉬운 글


글쓴이: * http://www.2sangbook.com

등록일: 2007-02-11 14:59
조회수: 5513 / 추천수: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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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소설 두권
최근에 새로 나온 '시간의 눈금'을 쉽게 읽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는 이윤기다.  내가 나이가 한참이나 어리니, 이윤기님 이라고 해야 될 것 같다.  아니, 신화학자이시니 이윤기 선생님, 혹은 이윤기 교수님?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다.  소설가이면서, 교수, 신화학자, 번역가이기도 한 이윤기에게는 그 어떤 수식어도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이윤기를 처음 접한 것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란 소설을 읽으면서부터다.  그 소설의 번역자가 이윤기였다.  장미의 이름의 원서를 보면 당장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소설에서 쓰인 언어는 이탈리아어, 영어, 불어, 라틴어 할 것 없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어디서부터가 주석 부분인 것인지, 또 그 많은 수사학적 표현들 이라니.  원서는 도무지 읽을 엄두를 못 낼 정도다.  그 소설을 번역한 사람이 이윤기였다.  그 때만 하더라도 나에게 이윤기라는 존재는 그냥 전문 번역가겠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의외로 이윤기의 이름으로 된 소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이 신화에 관련된 책들이었고 간혹 소설과 연작들이 보였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번역가가 소설도 냈구나 하는 식으로 생각해버렸다.  그러다가 정식으로 읽은 그의 소설이 ‘내 시대의 초상’이라는 연작 장편 소설이다.  그리고 그 한 권의 소설로 인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이윤기에 대한 고정관념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

신화학자라는 그의 이력에, 분명히 그가 쓴 소설의 내용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학문적 지식에 바탕을 둔 것일지도 모른다고 겁먹고 있었던 것일까.  ‘내 시대의 초상’ 이전 그의 소설은 나에게 아무런 흥밋거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첫 장을 펴고 읽어 내려간 순간 문장이 간결하고 알기 쉽게 쓰여 있어서 놀랐다.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냉수 같은 느낌이랄까.

그 후로 나는 이윤기처럼 글을 쓰고 싶어서 이윤기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그의 문체를 흉내내보기도 하고 문장 구조를 따라해 보기도 하면서 재미있는 문학 수업을 받는 즐거움에 빠졌다.  최근에 나온 사적인 글모음집인 ‘시간의 눈금’에서도 역시 그 만의 시원한 문장을 만날 수 있었다.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훑어보지도 않고 차례만 대강 보고 사버렸을 정도니 내가 생각해도 나의 이윤기 사랑은 대단하지 싶다.

글을 쓸 때 무작정 이윤기의 그것을 따라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쉬운 글쓰기는 가장 크게 배운 점이다.  사사로운 일기가 아닌 이상에야 글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읽는 이들의 것이다.  읽는 사람이 어렵게 생각하고 골머리를 썩는다면 그 안에서 무얼 배우고 느끼고 깨달을까.  윤동주는 말하길, 민족은 어려운 시절인데 시가 쉽게 쓰이는 것을 안타깝다 했다.  하지만 쉽게 썼기에 또한 쉽게 알아들었을 테고 사람들의 마음에 더 쉽게 다가갔으리라.  글의 매력은, 어려운 생각이라도 쉽게 풀어서 쓰는데 있는 게 아닐까.  어려운 생각을 어렵게 표현한다면 어차피 못 알아먹으니 안하느니만 못하지 않나.

세상은 복잡하지만 글을 쉽게 써야겠다.  쉽게 알아먹도록 써야 세상도 그 글을 읽고서 조금은 쉬워 질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200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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